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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리뷰

카투사 생활-16(카투사 훈련소, 수료식, KTA, 보직, 자대)

by 진강민승 2021. 12. 20.

카투사 훈련병의 KTA(카투사 훈련소) 생활(16)

안녕하세요. 의도치 않게 오랜만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거의 한 달 만이네요. 그간 바쁜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어서 짧은 글이지만 쓸 여유가 안 났습니다. 정말 중요하고 많은 일이 있던 KTA 마지막 수료식 날의 일기인데 이렇게 늦게 보여드려 죄송하기도 하네요. 글이 길어질 것 같아요. 지난 추억 재밌게 읽어주세요.

https://jinkmins.tistory.com/entry/%EC%B9%B4%ED%88%AC%EC%82%AC-%EC%83%9D%ED%99%9C-15KTA-%EC%88%98%EB%A3%8C-3%EC%B0%A8-PT-%EA%B5%90%ED%9A%8C-%ED%99%80%EB%93%9C%EC%98%A4%EB%B2%84-%EC%88%98%EB%A3%8C%EC%8B%9D

 

카투사 생활-15(KTA 수료, 3차 PT, 교회, 홀드오버, 수료식

카투사 훈련병의 KTA(카투사 훈련소) 생활(15) https://jinkmins.tistory.com/entry/%EC%B9%B4%ED%88%AC%EC%82%AC-%EC%83%9D%ED%99%9C-14WTT-%EC%82%AC%EA%B2%A9-M4-%ED%9B%88%EB%A0%A8%EC%86%8C-%EA%B5%90%EC%9C%..

jinkmins.tistory.com

 

KTA 18일 차.

 D-1. 어느새 내일이면 KTA 수료! 약 60일간 논산에서부터 적응하느라 고생한, 그리고 앞으로도 2주는 더 적응하느라 고생할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휴.. 오늘은 하루 종일 한국군지원단? 아무튼 ROKA 측에서 나온 사람들의 시답잖은 강연을 들었다. 쌉노잼. 그치만 다른 동기들과 얘기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좀 보낼 수 있었다.

 

 사용하던 물건들을 반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침대에서 사용한 린넨과 베개 보를 반납했다. 카투사 훈련소를 무사히 수료했음을 알리는 수료증과 카투사로서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DBIDs ID card도 받았다. 병원 갈 때도 봤던 거지만 진짜 어떻게 사람 증명사진을 이렇게 찍는지.. 무튼 하루 종일 수료식 연습도 하고 짐도 쌌다. 자대에 가면 Cif라는 곳에서 진또배기 물품들을 이것저것 받는다지만 여기서 받은 것만 해도 이미 보스턴백 두 개 치는 된다. 이걸 어떻게 들고 가나 걱정이다. 

 

 

 나름 정든 KTA를 떠나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든 적응 잘 해서 성공스러운 군생활하길 바라며... 그리고 내일 이 시간 일기에 웬 외딴 왜관 이런 데에 있는 부대에 떨어지게돼 욕으로 가득 찬 슬픔을 적지 않길 바라며... 평택 내에서만 움직이길 바라며.. 추운 겨울 예쁜 평택의 노을을 바라보며 마지막 하루 전 기도를 해본다. 벌써 떨린다. 

 

 오늘 약장도 미리 다 OCP에 붙여뒀다. 이등병 약장은 정사각형 패치 위에 붙기 때문에 세로로 붙이면 이등병이 아니고 1LT나 CW-5같다. 동기들이랑 그런 장난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일이면 다들 뿔뿔이 흩어지겠지. 덕분에 훈련소에서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기 여기서 마치겠다.

 

 

KTA 19일 차, 자대 1일차.

 

 오늘의 기억이 다 휘발되기 전 최선을 다해 남기는 오늘의 일기. 오늘은 대망의 수료식 날이다. 무려 60일간 애타게 기다려온 군생활에서의 두 번째 전환점. 60일간의 훈련병 신분에서 드디어 벗어나 21일 만에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 날.인데, 새벽 3시에 깼다. 룸메 형이 불침번한테 깨워달라고 부탁했었나 보다 ㅋ 왜지? 일찍 일어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쉽지 않다.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가 3시 20분에 다시 정식으로 깨 하루를 3시 30분에 시작했다. 하루가 3시 30분에 시작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마지막 날까지 잘 베고 잔 베개를 반납하고, 마지막 짐을 싸고, OCP를 입고(드디어 Day room에 처박혀있던 ROKA 더플백을 받았다), 우리의 수많은 짐들은 모두 turf에 나란히 번호순으로 정리했다. 그 후 우리가 한 달간 쓴 복도, 방을 한번 더 쓸고 닦고 할 일을 마치고 나니 6시 언저리여서 KTA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먹으러 갔다. 마지막 Chow formation이었다. 승모근이 머리만 한 교관이 우리한테 오늘 아침은 특별히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Semaphore에 가면 구경만 할 수 있었던 커피, 케이크, 쿠키,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을 손댈 수 있게 된 것이다. 늘 먹던 소시지 패티에 찔끔 주는 밥이 전부가 아니게 되어 다들 눈이 뒤집혔다. 나도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에서 동기들이 다 같이 미쳐선 케이크, 커피, 쿠키, 요플레, 파이 등 다양한 음식을 쟁반 위에 잔뜩 얹어서 돌아왔고, 미군 부대 안에 들어와서 가장 배부른 식사를 마쳤다. 오늘 아침에 먹은 커피와 케이크의 조합은 아마 평생토록 못 잊을 것 같다. 사람이 음식 그 조금에 그렇게까지 삶의 질이 바뀐다는 게 참 놀라웠고 씁쓸했다. 매일 아침 그렇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 줬으면 아마 다들 훨씬 더 만족스럽고 안전한 KTA 생활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밥을 먹고 마지막 road guard 활동을 마치고 Fleece, road guard vest를 반납했다. KTA 내내 동기들이 벌벌 떨며 밥 먹는 줄을 기다리는 동안 나를 따뜻하게 지켜준 개꿀 로드 가드 활동과도 이별을 고했다. 시원 섭섭.

 

 이후로는 계속해서 연습했다. 한 두어 시간 연습을 하고는 부모님이 우리가 있는 MPR로 들어오셨다. KTA admin들이 우리 수료식 동안 부모님 들어오신다고 떠들고 신나 하고 돌아보지 않으면 면회시간을 더 준다고 약속했기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도 "얘네가 뭔갈 걸고 내기를 하고 있군." 하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논산의 수료식과는 너무나도 달랐기에. 아무튼 그렇게 수료식이 진행되었고, 수료식은 연습 때보다 체감상 두배는 길었다. 아마 11시 정도였던 것 같다. hold over 되어 함께하지 못한 내 친한 동기는 그동안 복도에서 부모님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잔인한 KTA!! 

 

 

 가장 중요한 보직 분류 시간이 찾아왔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것처럼 예비 분류(연습) 후 실제 분류를 진행했다. 보직 분류에 거의 미쳐있던 수준이었기에 연습 분류때 좋은 거 나오고 실제 분류때 쓰레기같은게 나오면 그 상실감이 엄청날 것 같아 연습분류 때 내 이름 안 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분류 목록이 가나다 순이었기에 김 씨가 아닌 내 이름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음 편히 놓고 김씨 동기들이 온갖.. 듣보잡 부대로 팔려가는 걸 보며 "저기로 다들 가버리니 나는 평택이나 용산에 가지 않을까?" 하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내 결과는 스크롤을 내려야 알 수 있기에 확인하지 못하고 교관들에 의해 훈련병들은 싹 다 밖의 turf로 몰아져 나왔다. 우리가 직접 어디 부대로 가는지 난수 번호 분류결과지를 바탕으로 지정받는 동안 부모님들이 종이를 확인하시고 우리한테 알려주는~ 그런 잔인한 시스템이었다. 우선 AREA I(동두천)부터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다행히 내 이름은 없었다. 논산 동기들 14명 중 5명이나 동두천으로 가버렸다. 특히 굉장히 의지를 많이 하던 형이 동두천에 가게 돼 너무 아쉬웠다. 이윽고 AREA II를 발표했다. 용산은 솔직히 기대도 안 하고 있긴 했다. "용산은 아무나 가나?"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막상 이때가 오니 아 그래도.. 용산.. 되면 너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카투사 생활 1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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